동네탐방/인천 중동구 / / 2024. 2. 29. 02:07

인천 개항장 역사 문화의 거리 (2편) ~개항기 근대건축 문화유산~

 

 

인천 개항장 탐방 1편에서는 주로 일본풍 거리, 일본양식의 목조가옥과 상점등을 둘러봤는데요, 이번 2편에서는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개항기 시절에 지어져 현존하거나, 또는 광복 후 전쟁 등으로 소실되었지만 복원된 근대건축물(주로 석조)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각국의 조계지의 건축물들이 일본 소유로 넘어가며 변모하기도 했겠지만 6.25 전쟁으로 인해 많은 근대건축물이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이나 화재로 소실된 인천 개항기 근대건축물

 

인천해관: 1883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해관(세관의 중국식 용어). 1950년 6.25 전쟁 중 소실

홈링거양행: 1898년에 건축된 영국계 상사로 은행업도 겸했다. 1961년 화재로 소실

영국영사관: 1884년 지어진 목조건물로, 1897년 벽돌건물로 신축. 6.25 전쟁 중 소실

오례당 저택: 개항 초기 청국 외교관인 오례당이 1090년에 지은 건물. 1968년 화재로 소실

 

 

 

그럼 지금부터 전쟁과 재난, 1970년대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운 좋게 남아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천 개항장 거리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근대건축물들을  찾아보겠습니다.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1888년에 지어진 건물로, 인천항의 물류수송을 맡는 일본우선주식회사의 인천 지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일. 러의 제물포해전이 있었던 1904년 일본병참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광복 후 항만회사의 사무실로 사용되었습니다.

 

건립연도는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발견된 상량목에 기재돼 있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근대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하며 지금은 인천 아트플랫폼의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출처: 중구청)
개항기의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출처: 중구청)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주변에 조성된 인천 아트플랫폼
구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

 

구)일본제58은행인천지점

 

인천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의 은행업무를 위해 지어졌으며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이었습니다. 1892년에 완공됐으며 외형은 초기 프랑스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광복 후에는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합병)이 본 건물에 인천지점으로 1958년까지 운영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중구 외식업조합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
개항기의 구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 (출처: 중구청)

 

대불호텔

 

대불호텔.

 

개항기에 일본 조계지 안에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입니다. 1888년에 완공된 벽돌 3층의 건물로, 주로 인천항을 거쳐 입국한 외국인들이 서울로 가기 전에 이용했습니다. 1918년부터는 중화요리 음식점인 중화루로 사용되다가 1978년 철거되었지만 2018년에 당시의 모습을 복원하여 현재는 대불호텔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항기 대불호텔.
개항기의 대불호텔 전경 (출처: 중구청)

 

구인천일본제1은행지점

 

구)인천일본제1은행지점

 

1883년 인천 개항 후 일본제1은행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개설된 근대적 금융기관으로, 1988년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초기에는 해관 통과세와 한국에서 생산되는 금의 매입업무를 대행했으며, 점차 예금과 대출 등 은행업무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09년 한국은행 인천지점, 1911년 조선은행 인천지점, 광복 후(1950) 다시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899년 신축된 지상 1층의 석조 건축물로, 현관의 상부는 아치형이며 지붕은 중앙 돔과 작은 천장이 있고, 처마 부문의 난간도 석조로 되어 있는 등 매우 견고한 외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인천지점 이후 조달청 인천사무소, 법원 등기소 등으로 활용되다가 현재는 인천 개항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구인천일본제1은행지점
개항기 구인천일본제1은행지점
개항기(우측)의 구 인천 일본 제1은행 지점 (출처: 중구청)

 

 

최초의 우편배달부

 

개항박물관 옆에 설치된 조형물.

 

우리나라의 우편제도는 1884년 11월 18일 서울과 인천 간에 우편물이 교환되기 시작하면서 그 막이 올랐으며, 위 조형물은 근대 사진자료에 남아있는 우체부와 우체통(1912년식)의 모습에 기초하여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구인천일본제18은행지점

 

구)인천일본제18은행지점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일본제18은행은 나가사키의 상인들이 상해에 수입되었던 영국의 면직물을 수입하여 한국시장에 다시 수출하는 중개무역으로 큰 이익을 거두자 1890년 인천에 지점을 개설하였고, 이후 1936년 조선식산은행 인천지점, 1954년 한국흥업은행 지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항기(우측)의 구 인천 일본 제18은행 지점 (출처: 중구청)

 

옛 가와바타 창고 (가와바타철물)

 

일본인 가와바타 에자부로가 소유했던 건물로 알려져 있으며 1942년 아와야 철물점의 창고로 지은 벽돌조 건물로 개항기 당시(주변 일대를 매립하기 전) 건물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광복 후 한동안 설계사무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아침바다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인천영상위원회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근대건축물은 모두 개항장 거리의 일본조계지 내에 있는 것들로,

다음은 일본조계지 외곽 및 주변에 위치한 건축물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천 세관 구 창고와 부속동

 

인천 세관 구 창고와 부속동

 

개항 초기에 설치된 인천 세관의 사무소와 창고 건축으로 1911년 항동 1가에 청사와 함께 신축되었고 이후 1926년 인천항 내항의 축항공사가 완료된 뒤 인천 세관과 함께 이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천 세관 구 창고와 부속물이라도 관공서의 위상에 따라 권위를 표출하기 위한 양식과 당시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수인선 개설공사로 2012년 이축을 하였고, 현재는 신포역 앞 인천세관역사공원 내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구)제물포구락부 (시 유형문화재 제17호)

 

1891년 청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으로 조직되었고 처음에는 중구 관동 1가의 목조 단층에서 출발, 1901년 지금의 자유공원 기슭에 지상 2층의 벽돌조 건물을 지어 이전했습니다. 설계자는 사바찐(Sabatin)'이라는 러시아인으로 실내에 사교실, 당구장, 독서실, 외부에는 테니스장을 설치하는 등 사교활동 시설을 꾸몄습니다.

 

 

1914년 이후 일본재향군인회가 사용하면서 정방각으로 불렸으며, 광복 후 미군의 장교클럽, 시립박물관, 문화원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제물포구락부의 옛 모습을 재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배우 공유, 김고은, 이동욱 등이 출연한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계단 꼭대기로 올라가면 자유공원 광장이 나옵니다.

 

내동 성공회성당_인천내동교회

 

내동 성공회성당(인천내동교회)

 

1890년 9월 영국 해군 종군신부였던 코프주교와 내과의사인 랜디스가 인천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고, 코프 주교는 교회를 중심으로 포교에 전념하였고, 랜디스는 현재의 성당 자리에서 성 누가병원을 개설하고 의료구호사업에 전심하며 교세를 확장하였습니다. 1902년 잠시 러시아영사관으로 사용되었고, 1904년 제물포해전 당시 일본 적십자병원이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 성 누가병원이었던 곳에 세운 것으로 1956년 6월에 완공했습니다.

 

홍예문1

 

홍예문 (시 유형문화재 제49호)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을 관통하여 인천항과 전동을 연결하는 무지개 모양의 돌문으로 일본인들은 혈문이라고 불렀으며, 1905년 인천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공병대에 의해 착공되어 1908년 완공되었습니다.

 

화강암을 깎아서 4.5m의 폭, 13m의 높이로 쌓았는데 일본은 이 문의 축조를 통해 상인천과 하인천을 잇는 도로가 생겼고, 당시 포화상태였던 일본인 조계지를 아래로는 만석동 방향으로 확장하며 물자수송을 용이하게 하였고, 당시 일본의 토목공법을 알 수 있는 문화재로서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현재도 홍예문은 일반 도로로 사용 중입니다.

 

개항기의 홍예문 모습 (우측) (출처: 중구청)
홍예문의 밤

 

마치며..

 

이 외에도 소개하지 못한 많은 근대건축물이 있으며, 관련기사를 찾아본 봐 아직 조사자료가 부족해 정체성의 확립이 안된  근대건축유산이 곳곳에 숨어있다고 합니다. 필자도 이번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여러 번을 방문했음 해도 안내판이 없어 무심코 지나쳤던  낡은 건물의 스토리를 새로이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1883년 개항을 시작으로 1910년 일제강점기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시간 동안 남의 나라 땅에 지들 맘대로 이렇게 많은 것들을 만들고 변화시킨 것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한국인으로서 기분이 나쁘기도 합니다. 강제 개항, 조선이 신문물을 받아들여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첫걸음이기도 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그 대가로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 했던 양날의 칼과 같은 사건이었죠..

 

정말이지.... 이건 정말 의도치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어느새 자정이 넘어 2024년 3월 1일, 3.1절이 왔습니다.ㅠㅠ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독립을 위해 피 흘린 애국지사 및 순국선열분들께 경의를 담은 묵념을 끝으로, 이번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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