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역사와 문화 유적지, 자연, 명소, 여행지 등의 관련 정보를 직접 탐방해 보며 얻은 경험과 함께 사진과 글로 기록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글의 방문지는 '강화기독교 역사기념관'입니다.
강화대교를 지나 갑곶교차로 주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1893년 강화도에서 첫 선교를 시작으로, 이와 맞물린 격변의 시대에 갖은 풍파와 고난을 버텨내며 신앙과 믿음으로 이 땅을 지켜온 선조와 선교사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담아 2022년 강화도의 관문에 본 기념관을 건립했습니다. 또한 이를 위해 많은 교회들과 신도들이 종파를 넘어선 지지와 연합으로 소중한 기념품과 유물들을 기증하여 전시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관람료가 있는데요 성인은 2000원, 청소년, 단체관람(20인 이상)은 1500원, 강화군민, 국가유공자, 노인, 장애인 유아는 무료입니다. 관람시간 09~18시, 매주 일요일은 휴일.
1층 출입문을 열고 로비에 들어서며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이는 전시물입니다.
'기억의 종'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당시 군수물자가 부족해지자 교회의 종이나 민가의 놋그릇 등 쇠붙이들을 모두 수탈해 감으로 대부분의 교회들이 종을 빼앗겼지만 몇몇의 교회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교회 마루장을 거둬내고 땅을 파 숨겼는데, 여기에 전시된 종이 그렇게 남겨진 강화도내 어느 교회의 종으로 100년의 슬픈 역사를 가진 종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선교사인 로다(Rhoda)는 1898년 강화도에 입도하여 온수리 지역에서 노인산(로스) 의사의 진료를 도우며 강화지역 여성선교에 매진하다 1908년 풍토병으로 별세하였고, 이를 추모하기 위해 창리 십자산 성공회 강화읍교회 묘지에 유해를 안장시키며 십자가 기념비를 세운 지 110여 년이 흘러, 본 기념관 건립과 함께 강화읍교회가 봉헌하며 1층 로비에 진열하게 되었습니다.
1층 로비 한쪽 벽에 전시된 강화도에 있는 교회 분포 지도입니다.
강화도 현재 인구수가 약 69000명인걸 생각하면 교회가 정말 많은데요 200곳이 넘는다고 합니다. 대한성공회 성당이 12곳에 100년이 넘은 교회도 많다고 하는데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는 교인이 1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강화기독교 역사 기념관은 강화군의 지원과 감리교와 성공회가 중심이 되어 초교파적으로 합심하여 2022년 3월 개관하였다. 대지 총 5,550평에 건평 약 600평 1, 2층으로 1층은 로비와 기획전시실, 세미나실이 있으며 2층은 상설전시관으로 강화역사관, 3.1 만세 운동, 선교전파 경로 및 강화기독교 역사인물관과 기독교 순례길, 어린이체험실과 북카페가 있다.
강화도 출신 '유광상 화백'의 작품
제목은 위 좌측 '꽃을 든 마리아', 우측 '예수 십자가에'
아래 좌측 '탕자의 귀환', 우측 '예수의 고난'
고려 때 몽고 침략, 조선시대 프랑스와의 병인양요, 미국과의 신미양요,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을 거치면서 아픔을 겪은 강화인들은
서양 선교사들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1893년 성령의 두 빛줄기 성공회와 감리교의 선교가 시작되었다.
강화에서 기독교 전파는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강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수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통적 문화의 결합을 통해 기독교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특유의 토착적 신앙화가 만들어졌다.
성공회는 강화의 관문인 동쪽 갑곶에 첫 선교사 워너를 통해 성니콜라 회당을 만들어 고아들을 모아 선교를 시작했고, 감리교는 강화의 서쪽 시루미에 인천내리교회 존스 선교사가 이승훈의 어머니에게 배 위에서 세례를 베푼 것이 첫 선교의 시작이다.
이후 성공회는 통제영학당 교관인 코웰 대위와 커티스 부관이 살던 동문 안 관사를 구입하고 이전하여 선교본부를 구성하고 교세를 확장해 갔다. 감리교는 시루미 이승훈 가족과 초시 김상임이 개종하면서 자신의 집에 첫 감리교회인 교항(현 강화교산)교회를 설립하고, 이어 두 번째 교회인 홍의교회를 통해 고부, 건평, 흥천교회가 생겼으며 삼산면, 교동면, 서도면으로 복음이 확장되었다. 1900년에 잠두(현 강화중앙)교회가 강화읍에 설립되고, 잠두교회 성도 이동휘 권사를 중심으로 마을마다 학교를 세워 민족운동과 육영사업을 시작했다.
한편 동문 안으로 선교본부를 이전한 성공회는 1900년 12월 강화읍성당을 건축하고 신학교와 수도원을 설립했다.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처음 가르쳤으며, 선교지역을 온수리 지역으로 확대해가며 교육, 의료선교를 하여 온수리, 내리, 넙성리, 사기리, 여차리, 초지교회를 설립했다. 이후 강화는 감리교와 성공회뿐 아니라 성결교, 장로교, 침례교, 순복음교회 등이 각 마을에 세워져 210여 개의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연합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코프(Corfe,C.J)에 의해 1900년에 건립되었다. 현존하는 한옥 교회건물로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서유럽의 바실리카 양식과 동양의 불교 사찰양식을 과감하게 조합시켜 건립하였다. 성당 내외부에는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축이면서도 한국기독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성당건물이다.
특별히 기억할 것은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강화 마리산의 기도운동이다. 1915년부터 190년대까지 성령의 바람이 강화에 불어와 그 복음이 황해도, 해주, 김포까지 번져나갔다. 성령 운동은 항일 운동과 함께 연결되어 강화에서 3.1 운동 당시 1만 명이 참여했다. 현재 선조의 숭고한 신앙을 이어받아 강화도의 교회는 내외적 성장을 거듭해 왔으며, 강화 출신의 수많은 영적 지도자가 국내외 각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1층과 2층에는 진귀한 과거의 유물들이 다양하게 전시돼있는데요, 1800년대 말부터 일제 강점기, 강화기독교인의 생애와 활동을 느껴볼 수 있는 유물과 선교 기록물, 문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공회 선교 초기 1899년대 사용한 오르간
영국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난로, 1870년대 인쇄기, 향로 등.
아모권면.출애굽기 1905-1908, 주일성경보통경과 1940년대
성서강목(성경사전) 1916, 성지의 풍속과 습관 1932
3.1 만세 운동에 사용된 태극기
BIBELEN(덴마크성경, 1889), HOLY BIBLE (거룩한 성경, 1884)
한글성경 (홍의교회, 1906), 마가복음 (1885)
성경 문제집 (1955), 신과 함께한 시간 (1900) - 이탈리아어 기도 책자
천로지남 (1914) - 복음 전도책, 구약사기 (1923) - 소안론 선교사 역술
동방박사 - 로얄 코펜하겐 크리스마스 접시 (1910)
휘트모어 선교사 가방 - 1896~1935년까지 한국 선교
모닝캄 (Morning Calm, 1902) - 1890년 영국에서 첫 호가 발행, 한국 성공회 소식을 영국에 전하는 소식지, 120년 넘게 발행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잡지
조선 성공회 회보 (1915) - 한국성공회의 신문으로 1908년 7월 첫 호 발간. 주교의 사목과 교리, 성경공부, 각 교회의 소식 등을 게재하였다.
세계 여행 (LE TOUR DU MONDE, 1873)
1866년 프랑스 역사화가 M.Zuber가 작성한 강화 여행잡지
인천과 강화 지역의 성공회에서 사용하던 100년 된 진공 오르간(Vacuum Organ)
- 인천내동교회 기증 (1970년대까지 사용)
이외에도 사진으로 소개하지 못한 많은 전시물이 다양하게 진열돼 있으며 기념관에 머무른 시간이 2시간이 넘었는데도 부족하다고 느꼈을 만큼 자료가 방대하며, 강화도의 역사와 얽힌 한국 기독교의 발자취를 일반인도 쉽게 따라가며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전시 구성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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